Sunday, Novembe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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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AI와 로봇의 지정학···중국·미국·일본이 그리는 미래 권력의 구도



AI과 로봇공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이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변혁의 시대를 촉발하는 촉매제다.

머신이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행동’하게 되는 ‘체현된 초지능(embodied superintelligence)’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변화는 과거 증기기관, 석유, 핵 에너지가 가져온 산업혁명보다 훨씬 더 깊게 세계 경제와 안보 구조를 재편할 것이다.

이 경쟁은 전 세계에 고르게 펼쳐져 있지 않다. 세 명의 결정적 주자는 중국, 미국, 일본이다. 세 나라는 각기 다른 문명적 유산, 경제 모델, 그리고 전략적 방향성을 가지고 이 경쟁에 임하고 있다.

제1부 중국 : ‘공학국가’의 귀환

중국의 부상은 그 문명적 흐름을 통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000년의 절반 이상 동안 중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었다. 그 문화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뻗어나가 문자 체계, 철학, 의학, 음식, 정치 제도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중화(中華, Center Kingdom)’는 이상적 상징이 아니라 현실적 운영 체계였다.

유럽 제국과 달리 중국은 해외 정복을 거의 추구하지 않았다. 15세기 정화(鄭和)가 이끈 대규모 원정선단은 식민지가 아닌 선물을 남겼다. 중국 내 정치적 정당성은 절차가 아니라 성과에 기반했다. 즉, 통치자가 번영과 안정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실현했는가가 기준이었다. 황허(黃河)를 다스린 전설의 인물 ‘우공(禹)’에서부터 현대의 고속철도망 같은 인프라 기적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자신을 ‘공학사회’로 인식해왔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포함해 중국 지도부의 상당수가 공학·이공계(STEM) 배경을 갖고 있다.

중국이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한 굴욕의 세기’라 부르는 시기는 역사적 일탈이었다. 아편전쟁은 착취의 상징이었다. 영국은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국에 중독성 약물을 강제로 유입했고, 홍콩에서 인도에 이르는 제국의 거점은 중국 무역 통제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 부상은 ‘새로운 상승’이 아니라 ‘역사적 정상 복귀’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이미 구매력 기준(PPP) 세계 최대 경제이며, 향후 10년 내 명목 GDP에서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BYD, 니오, 샤오펑)와 태양광 제조 등 21세기 에너지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우위는 단순한 제조를 넘어 생산 전반으로 확장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생산국으로, 삼협댐(Three Gorges Dam) 같은 공학적 거대 프로젝트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풍력 단지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발전 능력도 빠르게 확대 중으로, 향후 10년 내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AI와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의 진전 속도는 놀랍다. 유니트리(Unitree)와 유비테크(UBTech) 같은 기업이 인간형 로봇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중국 연구소들은 ‘물리 지능(bodily intelligence)’의 핵심 기술인 비디오 생성 부문에서 선도적 성과를 내고 있다. 딥시크등 연구소가 공개한 오픈소스 모델은 격차를 빠르게 좁히며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서방 연구소의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실제 공급망의 물리적 기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정제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공급망을 통제하고,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의 80percent를 생산한다. 이러한 원자재 공급 지배력은 서방의 어떠한 정치적 수사로도 뒤집을 수 없는 실질적 힘이다.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에 열광하던 시기에, 중국은 철도, 항만, 산업단지를 건설하며 일관된 ‘공학국가’의 철학을 실천해왔다. 이는 중국이 기술과 인프라를 통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제2부 미국 : 자본주의와 그에 대한 불만

미국은 자본 배분을 사회 운영의 최상위 원리로 삼는 앵글로-아메리칸식 자본주의 모델의 전형이다. 이 모델은 역사적으로 폭발적인 혁신을 이끌어왔다. 산업혁명의 유산에서부터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거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깊은 자본시장, 기업가적 위험 감수, 인재 유입력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수차례 증명했다.

그러나 약점도 명확하다. 환경 파괴부터 노후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부효과가 체계적으로 저평가돼 왔다.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미국은 물리 산업의 근간이 되는 암묵적 지식과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을 스스로 비워냈다. 인프라만 봐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중국은 4만 킬로미터가 넘는 고속철도를 건설했지만, 미국은 보스턴에서 워싱턴 D.C.까지 시속 160km로 연결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제조업의 재국산화 한계는 TSMC의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사례에서 드러난다. 수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생산된 칩의 단가는 대만보다 비싸고 공급망 대부분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제조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옮겨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쌓인 경험, 공급업체 네트워크, 산업 문화가 함께 형성돼야 한다.

비슷하게, 고용률이 높은 경제에서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 오히려 노동력을 비생산적 부문으로 옮기거나, 필수 산업재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수요를 파괴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탈산업화를 더욱 가속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 오픈AI, 앤트로픽등이 첨단 AI 연구소를 이끌고 있으며, 엔비디아, AMD, 퀄컴을 통해 반도체 설계 분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생태계는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할 수 있는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의 소프트웨어 강점을 제조, 로봇, 에너지 인프라가 핵심이 되는 ‘체현된 AI(embodied AI)’ 시대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그 적응 능력이, 미국 자본주의가 다시 한 번 기술문명의 패러다임을 주도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제3부 일본 : 로봇의 군도(群島)

AI가 ‘두뇌’라면, 로봇은 ‘육체’다. 그리고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성숙한 로봇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파낙(Fanuc), 야스카와(Yaskawa), 가와사키(Kawasaki), 덴소(Denso) 같은 기업들뿐 아니라, 일본의 강점은 정교한 공급망, 통합 기술자, 그리고 고도의 전문성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산업 구조에 있다. 이른바 ‘산업 기억(industrial reminiscence)’이라 불리는 이러한 구조는 다른 나라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일본만의 자산이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자동화 기술은 자동차 공장부터 반도체 생산라인까지 세계 제조업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일본의 성장 궤적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제약을 받아왔다. 전후 미·일 동맹은 안정성을 보장했지만 자율성을 제한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의 고도성장기는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미국의 영향력이 일본의 경제적 날개를 꺾은 상징적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앞으로 일본은 ‘가교 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있다. 일본 문화는 이미 중국과 서구의 유산을 융합하고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 서양어 표기를 위한 가타카나(カタカナ)가 이를 보여준다. 지정학적으로 일본은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직통전화(crimson phone)’ 같은 중재자 역할을 하며 파국적 충돌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중국에 대한 편견을 직시하고, 교육과 상호 이해, 문화적 공감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이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중국 역시 일본의 중재자 역할을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설득력 있는 방향은 미·일 간 ‘로봇·AI 동맹’이다. 미국은 최전선 AI 연구를 주도하고, 일본은 실체화된 로봇 기술을 지배한다. 양국이 협력한다면, 중국의 제조 중심 전략에 강력한 균형추를 형성하면서 두 나라 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다. 이 동맹은 단기적 기술 협력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대규모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미국의 막대한 연산 인프라와 벤처 자본 생태계가 일본의 물리 세계에 대한 독보적 장인정신과 결합할 때,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열릴 수 있다.

중국의 국가주도형 모델이 일체형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통합에 강점을 보이는 반면, 미·일 동맹은 전혀 다른 전략적 우위를 갖고 있다. 바로 개방적이고 분산된 글로벌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양국이 개방형 표준을 주도한다면, 유럽·인도·중동·동남아 제조업체들이 참여하는 ‘슈퍼팩토리 네트워크(superfactory community)’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공통된 지능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제조 연합체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분산형 모델의 힘은 대규모 맞춤형 로봇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즉, 각 산업과 환경에 특화된 무한한 종류의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마치 ‘로봇의 캄브리아기 폭발(Cambrian explosion)’처럼 산업 생태계를 급속히 다양화시킬 것이다. 이는 중앙집중적이고 단일화된 중국식 접근에 대한 강력하고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건설적 경쟁을 향하여

중국의 부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그것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단지 다른 운영 모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자본 우위를 중심으로 한 앵글로-아메리칸식 모델도, 공학 중심의 통치를 기반으로 한 중국식 모델도 완전한 체계는 아니다. 두 모델 모두 필자가 ‘정렬경제(Alignment Economic system)’라 부르는 새로운 틀의 근사치에 불과하다. 정렬경제란 시장의 가격이 인간의 자유와 번영에 미치는 실제 영향을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필자의 저서 『초지능의 부상(The Rise of Superintelligence)』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실현되기 전까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 중국의 부상을 역사적 필연으로 인정할 것.
• 제로섬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치열하면서도 건설적인 경쟁을 펼칠 것.
• 로봇과 AI 분야에서 미·일 협력을 확대해 두 경제 모두가 윈윈하는 기반을 구축할 것.
• 일본이 미·중 간의 중립적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해 체계적 위험을 줄이도록 지원할 것.

이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경제적 승패에 있지 않다. AI와 로봇은 누가 더 부유해질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생명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선도국들은 경쟁만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협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정렬’을 이뤄내야 한다.

*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일본 도쿄를 지사를 둔로 한 인티그럴AI(Integral AI)의 공동설립자이자 CEO로서, 자동차 및 공장 자동화 산업에서 첨단 AI 연구와 일본 로봇 기술의 교차점에서 직접 활동하고 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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