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7이 막 출시된 듯하지만, 이는 실제로 2024년 1월에 공식 발표된 기술이다. 업계는 이제 후속 표준인 와이파이 8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브로드컴(Broadcom)은 최근 업계 처음으로 와이파이 8 기반 실리콘을 공개했다. 공식 명칭은 IEEE 802.11bn이며, 표준 확정은 2028년으로 예상되지만 기술 개발은 이미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전 세대가 최고 속도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면, 와이파이 8은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안정적이고 일관된 성능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새 표준은 ‘협력형 멀티 액세스 포인트(Coordinated Multi-AP)’ 기능과 동적 스펙트럼 관리(Dynamic Spectrum Administration), 그리고 네트워크 엣지에서 AI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하드웨어 가속 텔레메트리({Hardware}-Accelerated Telemetry)를 도입할 예정이다.
802.11bn 규격은 단일 기능 중심으로 발전해 온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이전 세대는 각기 하나의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와이파이 6는 OFDMA(직교 주파수 분할 다중 접속), 와이파이 6E는 6GHz 대역 지원, 와이파이 7은 320MHz 대역폭 확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와이파이 8은 여러 가지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평균 지연 시간뿐 아니라 극단적 상황에서의 지연까지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브로드컴 제품 마케팅 디렉터 크리스토퍼 시만스키는 “와이파이 8은 특정 기술 하나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능이 조합돼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초고신뢰’ 아키텍처
와이파이 8 아키텍처의 핵심에는 ‘초고신뢰(Extremely Excessive Reliability, UHR)’라는 개념이 있다. 이 구조적 철학은 최상의 조건에서의 최고 성능이 아니라 전체 사용자 중 99percent가 체감하는 실제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대칭형 대역폭, 5밀리초 이하의 안정적인 지연 시간, 그리고 신뢰성 높은 업링크 성능을 요구하는 AI 애플리케이션의 특성을 반영한다.
또한 기존 와이파이는 다운로드 비중이 압도적인 90대 10 비율로 최적화돼 있었지만, AI 애플리케이션은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거의 대칭인 50대 50 구조를 요구한다. 음성 비서, 엣지 AI 처리, 센서 데이터 전송 등은 모두 일정하고 지속적인 업링크 용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만스키는 “AI 트래픽은 기존과 완전히 다르다. 엣지 디바이스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업링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이 데이터는 클라우드나 온프레미스 환경으로 전송된다. 따라서 훨씬 더 지능적인 자원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협력형 멀티 액세스포인트 운영
와이파이 8은 핵심 혁신 중 하나로 협력형 멀티 액세스포인트(AP) 개념을 도입했다. 각 AP가 독립적으로 동작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AP가 서로 통신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이는 기존의 자율형 AP 운영 방식에서 크게 진화한 아키텍처다. 기업 환경에서는 네트워크 전반에서 패킷 처리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여러 AP가 음성 및 영상 트래픽을 공동으로 식별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구조를 통해 시스템은 네트워크 혼잡 상황에서도 지연에 민감한 애플리케이션이 안정적으로 필요한 리소스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AP 간 협력은 여러 기능을 통해 구현된다.
- 협력형 공간 재사용(Coordinated Spatial Reuse, Co-SR) 기술은 여러 AP가 전송 전력을 동적으로 조정하도록 지원한다. 한 AP가 특정 클라이언트의 신호 세기가 강하다는 것을 감지하면, 인접한 AP에게 이를 알린다. 인접한 AP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간섭 없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전송 전력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서로의 신호를 직접 감지하지 못하는 단말들이 동시에 데이터를 전송해 충돌이 발생하는 ‘히든 노드’ 현상을 방지하면서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 또 다른 핵심 기능인 협력형 빔포밍(Coordinated Beamforming, Co-BF)은 협력 개념을 방향 전송으로도 확장한다. 여러 AP가 클라이언트의 위치 정보를 공유하고 빔 패턴을 조정함으로써, 동일한 커버리지 영역 내에서도 각기 다른 클라이언트를 동시에 서비스할 수 있다. 각 AP는 서로의 클라이언트를 피하도록 빔을 조정해 간섭을 최소화한다.
시만스키는 “와이파이 8 환경에서는 여러 개의 겹치는 메시 네트워크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동적 스펙트럼 접근 혁신
와이파이 8은 주어진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3가지 핵심 기능을 새롭게 도입한다. 이 3가지 기능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스펙트럼 효율을 극대화한다. 브로드컴이 수행한 고밀도 아파트 환경 시뮬레이션 결과, 와이파이 8에서는 와이파이 7 대비 평균 처리량이 200% 증가하고, 99번째 백분위수 기준 지연 시간이 6분의 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비주 채널 접근(Non-Main Channel Entry, NPCA) 기능은 기존 와이파이의 ‘주 채널 우선 사용’ 규칙을 깬다. 현재 와이파이는 주 채널이 비어 있어야 다른 대역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60MHz 대역폭을 지원하는 장치가 있어도, 주 채널 80MHz가 혼잡하면 보조 채널 80MHz는 사용할 수 없다.
NPCA는 주 채널의 가용성을 기다리지 않고 보조 채널만으로도 전송이 가능하도록 해, 활용되지 못하던 스펙트럼 자원을 채워 넣는다.
시만스키는 “모든 기기가 동일한 대역폭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물인터넷(IoT) 기기는 훨씬 좁은 대역폭을 사용하고, 반면 노트북은 320MHz 대역폭을 지원할 수 있다. 지금의 와이파이에서는 이런 스펙트럼이 비어 있는 상태인 경우가 많지만, NPCA를 통해 모든 대역을 효율적으로 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동적 서브채널 운영(Dynamic Sub-Channel Operation, DSO)은 AP가 실시간으로 혼잡한 스펙트럼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존에는 설정된 채널에 고정되어 운용됐지만, DSO는 전송 단위별로 더 깨끗한 주파수 대역을 찾아 자동으로 이동한다. 이를 통해 혼잡 구간을 회피하며 안정적인 전송 품질을 유지한다.
동적 대역폭 확장(Dynamic Bandwidth Growth, DBE)은 클라이언트 성능과 스펙트럼 환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채널 폭을 조정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AP는 320MHz 대역폭을 지원하는 노트북에는 최대 폭을 배정하면서 동시에 20MHz만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함께 서비스할 수 있다. 스펙트럼 가용성이 변할 때마다 대역폭이 자동으로 조정돼 기기별 연결 효율을 최적화한다.
확장 범위 기술 적용
와이파이 8은 IoT 기기를 위해 확장 범위(Prolonged Lengthy Vary, ELR) 모드를 도입한다. 이 기능은 더 낮은 데이터 전송률과 더 강력한 부호화 방식을 활용해 커버리지를 넓히는 기술로, 처리량을 일부 희생하는 대신 통신 거리를 비약적으로 확장한다.
ELR은 심볼 지속 시간을 늘리고 낮은 차수 변조 방식을 적용한다. 이는 배터리 구동 센서, 스마트홈 기기, 옥외 IoT 장치 등에서 장거리 전송 시 발생하는 손실을 개선한다. 브로드컴은 ELR을 통해 가시거리 환경에서 와이파이 7 대비 통신 거리를 최대 2배, 비가시거리 환경에서 약 1.5배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분산 자원 단위(Distributed Useful resource Models, dRu) 기능은 연속되지 않은 스펙트럼 자원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게 해 ELR을 보완한다. IoT 기기는 주파수 대역 내에 흩어져 있는 작은 스펙트럼 조각을 조합해 안정적인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도심지나 산업 단지처럼 스펙트럼이 혼잡해 깨끗한 연속 대역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유용하다.
아울러 와이파이 8 규격에는 개선된 변조 및 부호화 체계(Modulation and Coding Scheme, MCS)가 도입된다. 새로운 규격은 기존 MCS 단계 사이에 더 세분화된 속도 단계를 추가해, 신호 상태가 변하더라도 전송 속도가 부드럽게 조정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장치는 신호 세기가 약할 때 불필요하게 낮은 전송률로 떨어지지 않고 최적의 속도 구간에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와이파이 8은 향상된 저밀도 패리티 검사(Low-Density Parity Examine, LDPC) 코딩도 도입해 오류 정정 기능을 강화한다. 개선된 순방향 오류 정정(Ahead Error Correction, FEC) 기술은 동일한 신호 대 잡음비에서도 더 높은 데이터 전송률을 지원하며, 전파 간섭이 많은 무선(RF)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기술들이 결합되면서, 배터리로 구동되는 IoT 기기는 활성 상태 전력 소비를 최대 50% 절감하면서도 실제 사용 가능한 통신 거리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
끊김 없는 로밍 지원
와이파이 8은 로밍 성능을 대폭 개선해 1밀리초 미만의 초저지연 핸드오프를 구현한다. 이를 위해 규격에는 개선된 빠른 초기 연결 설정(Quick Preliminary Hyperlink Setup, FILS) 기능이 포함되며, 네트워크 인프라 전반에 협력형 로밍 의사결정 구조가 도입된다.
이 기능은 기기가 이동할 때 AP 간에 클라이언트 정보를 미리 공유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새 AP는 클라이언트의 성능 특성, 보안 인증 정보, QoS(서비스 품질) 요구사항 등을 사전에 알고 있기 때문에 재인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시 연결을 이어갈 수 있다.
협력형 로밍 구조는 ‘핑퐁 로밍(Ping-Pong Roaming)’ 현상을 방지하도록 설계됐다. 기존에는 신호 세기만을 기준으로 단말이 AP를 오가며 연결이 끊기는 문제가 있었지만, 와이파이 8은 현재 네트워크 부하와 신호 품질을 함께 고려해 어떤 AP가 클라이언트를 담당할지 동적으로 협상한다. 그 결과, 단말이 커버리지 경계에 있어도 두 AP 사이를 반복적으로 전환하는 일이 사라진다.
시만스키는 “향상된 로밍 기능 덕분에 집이나 사무실 어디에 있든 항상 AP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며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개선은 특히 음성 통화나 화상회의 같은 실시간 애플리케이션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 와이파이는 로밍 중 50~100밀리초의 통신 공백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와이파이 8은 한 자릿수 밀리초 수준의 전환 지연을 목표로 한다.
브로드컴의 와이파이 8 칩셋 포트폴리오
브로드컴은 와이파이 8 기술 상용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정용, 기업용, 모바일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칩셋 라인업 4종을 발표했다.
- BCM6718: 4스트림(4×4) 320MHz 트라이밴드 라디오 칩으로, 가정용 게이트웨이와 서비스 사업자 장비용으로 설계됐다. 브로드스트림(BroadStream) 텔레메트리 엔진과 3세대 DPD(디지털 전치왜곡) 프론트엔드 모듈을 탑재했다.
- BCM43840: 기업용 AP를 위한 4스트림 와이파이 8 칩으로, 고정밀 위치 추적 기능과 고밀도 클라이언트 지원이 특징이다.
- BCM43820: 기업 환경에서의 전용 모니터링 및 분석용 라디오 칩으로, 데이터 전송용 라디오와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2스트림 스캐닝 전용 칩이다.
- BCM43109: 모바일 기기용 콤보 칩으로, 2스트림 320MHz 와이파이 8, 블루투스 6.0, 스레드 v1.4, 지그비 프로(Zigbee Professional), 802.11az 기반 보안 레인징(Safe Ranging) 기능을 통합했다.
브로드컴의 와이파이 8 칩셋은 IEEE 802.11bn 초안 1.5 버전(Draft 1.5)을 기반으로 한다. 시만스키는 해당 사양이 아직 IEEE 표준화 과정에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호환성에 대해 확신했다.
그는 “초안 1.5 버전은 사실상 동결 상태에 있다. 현재 남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브로드컴 칩셋은 최종 802.11bn 표준과 와이파이 얼라이언스(Wi-Fi Alliance)의 인증 요건 모두에 완벽히 부합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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